홍의에 백마를 타고 휘하에 17명의 장수와 수천 의병을 거느리면서 정암진,기강, 현풍, 창녕, 화왕산성, 진주성지역전투에서 신출귀몰하는 전략,전술로 왜적을 크게 무찌르고 백전백승함으로써 왜병의 전라도 진격을 저지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진주 목사를 지냈고, 한성부 우윤, 함경도 관찰사를 일시 역임하였다.
장군은 사후에 병조판서 겸 지의금사에 추증되었다.
정암루 임진왜란때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홍의장군 곽재우와 그 휘하의병들이 목숨을 다 하여 왜군을 무찔렀던 정암진에 있는 루이다.
의령의 관문 정암교는의령의 관문이자 함안군과 경계를 짓는 남강(南江 또는 鼎江)의 정암 철교아래 강물속에는솥 뚜껑을 닮은 바위가 있으니 솥바위(鼎岩)라 한다. 옛부터 정암진(鼎岩津)으로 도선장이 있었고, 임진왜란때는 망우당 곽재우장군이왜적을 막았던 정암진에, 솥바위는 반쯤 물위에 드러나면 물밑에는 솥다리 처럼 세개의 큰 기둥이 받치고 있다하여 솥바위라고 한다.
진주성 북쪽에 있는 공북문(拱; 두 손 맞잡을 공) 입구에서 이,김,하, 천, 엄공,그리고 나
공북문 앞 매표소에서
拱北問은" 북쪽에 계시는 임금님을 향해 두 손을 모아 공경의 뜻을 표한다."는 의미를 가진 문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