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족
진도대교를 찾아 (1) ! 2025.4.19
울산청길
2025. 4. 24. 14:26
4월이 가기전에 포근한 사랑의 기운과 봄향기 맡으며 아름다운 다해도탐방을 위해 1박 2일(19일, 20일)으로 진도, 완도, 청산도를 탐방하기 위해 07;00에 울산을 출발했다.
# 19일 : 울산 07;00 -남해고속 - 해남- 진도 - 완도(14:50) - 청산도(15:40)-서편재촬영지 - 범바위 - 숙소
# 20일 : 청산도에서 고인돌공원-신흥해수욕장-진산리갯돌해변-단풍나무길 -도청항(09;40출항) -완도여객터미널-완도타워-청해진유적지-신진대교으로 가려다가 월출산 보위사-남해고속-울산 집(20:00)
해남 학동리 우수영과 진도의 녹진리 그 주변은 명량대첩 기념공원으로 조성되어 있고, 진도 대교는 해남과 진도를 연결하고 있다.
웅장하게 펼쳐진 진도대교이다.
다리밑으로는 바닷물이 세차게 흘러는데, 여기가 바로 울돌목이다. 이 해협의 거리는 300여m 가장깊은 곳의 수심은 20m이고 가장 빠를 때 물의 속도는 시속24km나 된다고 한다.
그리고 조수 때는 우뢰와 같은 바다에서 울음소리가나서 명량이라고 불러지고 있다.
여기도 임진왜란 3대첩이기도 하다.
거북선 모형의 판옥선이다.
조선시대 수군의 대표적인 전투선인데 노젓는 노꾼은 1층, 전투원은 2층,갑판위는 판옥이다
판오선 내부로 들어가보았다.
판옥선 안으로 들어서니 마음에 와 닿는 액자가 눈에 띄인다.
충무공 이순신은 모함에 의해 감옥에 있을 때 원균이 뒤를 이어 수군통제사가 되어 왜선과의 첫 전투에서 대패하여 해상권을 상실하였다.
다시 충무공 이순신이 삼도 수군통제사로 기용할 때, 선조임금이 전력을 우려하며서 육지에서 궐율장군을 돕우라 권하였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은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있아옵니다."
"죽을 힘을 다해 항거해 막는다면 비록전선은 적지만 오히려 가능한 일입니다.......!"
"미신불사측' 미천한 제가 죽지않은한 " 적불감모아의" 적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것입니다."
비장한 각오의 징계를 올렸다.
부하들에게 전투에 임하면서
"필생즉사 사필즉생" 나의 마음을 찡하게 하네요 !
명량대첩 !
거북선엔 장거리 대포가 장착되어있고 360도 회전이 가능하고 원거리 전투에 강하다고 한다.
1957.9.16 새벽 왜선 133척이 명량해렵으로 유인하여 이순신장군은 12척과 수리한 1척으로 왜선을 물리쳤던 것이다. 명량대첩의 승리는 너무나 놀라운 기적이고 세계사에 길이 빛날것이다.
해남학동리와 진도의 녹진리를 연결하는 진도대교외에 해상 케이불카가 설치되어 운행하고 있었다.
이용객이 극히 적은것 같고, 해상케이불카도 타보고 싶지만 완도에서 청산도를 가는 선박시간을 밎추기 위해선 바로 떠나야 했다.